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일대기

오늘은 후기 고전파 및 과도기의 대표적 인물들을 알아보려고 하는데요!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들로는 안토니오 살리에리, 볼프방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루트비히 판 베토벤, 요한 내포무크 홈멜,페르난도 소르, 프리드리히 쿨라우 등이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입니다!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이 사람만큼은 안다! 하는 사람이바로 모차르트죠~~

모차르트는 로마 교황 임명의 대사교가 통치하는 가톨릭 세력이 강한 로마풍의 잘츠부르크(Salzburg) 에서 1월 27일, 태어났다고 해요! 아버지인 레오폴트 (Leopold Mozart)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누나와 동생에게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시켰는데, 특히 볼프강은 비상한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어 주위를 놀라게했다고해요!

1762년 아버지는 6세인 볼프강와 11세의 누나 니네(Nannerl)를 데리고 뮌헨으로

연주여행을 시작했는데요!

이것을 필두로 거의 10년간 소년시절을 주로 각지를 연주여행 하는데에 소비되었고,

특히 1763년부터는 파리•런던•암스테르담으로 3년동안의 대여행을 하게되었다고 합니다~

각지에서 얻은 음악체험과 서로 교제한 음악가들의 활동은 그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되었고,

특히 1772년부터 행한 세번째 이탈리아 여행은 바로 청년기를 향하는 정신적인 성장기와도 겹쳐

모차르트의 음악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죠!

[알렐루야]를 포함하는 유명한 모테트 [엑슐타테 유빌라테]는 이 여행의 산물이었다고 합니다!

1778년 모차르트의 창작활동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는데요! 6월부터 기적의 2개월간에 고전 교향곡의

극치를 보여주는 마지막 3대 교향곡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빈의 청중이 고도로 완성된

그의 만년의 예술을 이해할 리가 없었죠… 궁정 음악가의 칭호도 적은 액수의 연봉을 보증할 따름이었고, 연주여행을 비롯한 돈 마련을 위한 시도는 어느 것 하나 시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ㅠㅠ

​최후의 해인 1791년 7월, 오페라 [마적]의 완성을 가까이 앞둔 모차르트는 검은 옷을 입은

낯선 남자의 방문을 받고 [레퀴엠] 의 작곡을 받았다고 해요!

생활비 때문에 할 수 없이 작곡을 하기로 한 모차르트는 그날 밤 이후 괴로움에 시달렸어요.

당시 모차르트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날 이후 병이 점점 더 악화되었죠.

모차르트는 그 사나이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저승사자라는 생각이 들어 공포에 떨면서 진혼곡 작곡에 몰두했어요.

그러나 그의 예감은 불행하게도 일치되어 그는 진혼곡을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그 해 겨울 12월 5일 3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차르트의 불길한 예감을 안고 탄생한 곡이 바로 레퀴엠 d단조예요.

결국 눈물의 날(라크리모사) 앞부분까지만 작곡되어 미완성으로 남겨진 이 곡은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나머지 부분을 완성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레퀴엠 이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위령미사)’때에 하느님께 죽은 이의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 주시기를 청하며 연주하는 전례 음악이다

레퀴엠 즉, 진혼곡은 휴식을 뜻하는 라틴어 ‘Requies’에서 유래한 말로,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곡이에요.

즉 죽은 이를 추모하기 위해 미사에 쓰이던 음악이었죠.

옛날 가톨릭교회에서는 레퀴엠으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렀지만 17세기부터는 합창과 관현악까지 동원된 곡이 따로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의 작곡가들이 유명한 레퀴엠 작품을 남겼습니다.

교회 예식과는 상관 없이 순수 연주회용으로 만들어진 레퀴엠들도 등장했는데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나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등이 순수 연주회용 작품들이죠.

그런데 과연 죽은 이에게도 음악이 필요했을까요?

당시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장례식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어요.

그래서 유명 작곡가에게 많은 돈을 주고 진혼곡의 작곡을 의뢰했지요.

이것은 당시 가난한 음악가에게는 꽤 괜찮은 돈벌이였습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도 진혼곡을 작곡하는 것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고 하니까요.

모짜르트의 레퀴엠 들어볼까요

모차르트: 레퀴엠 중 라크리모사 (눈물의 날)
김대진(지휘), 디토 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홍혜란(소프라노), 정수연(메조 소프라노), 존노(테너), 박종민(베이스)
2021.4.29 모차르트: 레퀴엠 공연 중


의뢰한사람은 누구인가?

1984년 만들어진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레퀴엠 의뢰인을 빈의 궁정악장 살리에리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경건한 신앙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당대 최고의 음악가가 되길 날마다 기도했어요.

그러나 모차르트는 신앙심도 없고 경박하기만 한 젊은이인데도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신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죠.

살리에리는 오만하고 방탕한 천재 모차르트를 보면서 질투심이 극에 달해 끝내는 광기로 치닫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충격을 받아 방황하는 모차르트를 보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정체를 숨긴 채 진혼곡 작곡을 의뢰합니다.

쇠약해진데다가 무리한 작곡을 떠맡게 된 모차르트는 무거운 부담감 속에서 점점 죽음으로 자신을 몰아갔죠.

사실 모차르트에게 레퀴엠 작곡을 의뢰한 사람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었습니다.

그날 밤 모차르트의 현관문을 두드린 사람은 바로 발제크 백작의 하인이었죠.

백작은 죽은 아내에게 그 곡을 바치고 싶었는데, 자기가 직접 작곡했다고 하기 위해서 모차르트에게 정체를 감춘 것이었죠.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고 우울증과 망상 때문에 그 사람이 저승에서 왔으며 그 진혼곡은 자신의 진혼곡이라고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레퀴엠을 참고해서 자신의 레퀴엠 텍스트를 구성했어요.

그는 레퀴엠 작곡을 하는 동안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기에 자신의 생애 동안 얻은 작곡 기법을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all in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는 그가 초기에 작곡했던 미사곡들에 비해 더 우울한 분위기의 곡이에요.

슬프고 처절한 분위기로 매우 인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때로는 강렬한 선율로, 또는 극적인 효과로 절정에 이르게 하는 선율에는 말로 표한 할 수 없는 고귀함이 넘쳐 흐릅니다.

레퀴엠 d단조는 모두 8곡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1곡 인투로이투스, 2곡 키리에, 3곡 세쿠엔치아, 4곡 오페르토리움, 5곡 상투스, 6곡 베네딕투스, 7곡 아뉴스 데이, 8곡 코무니오로 이루어져 있죠.

연주자로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독창자와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참여합니다.


그 무렵 그는 이미 요독증으로 머리가 혼란해져있었는데, 이 기묘한 주문이 그에게 죽음이 가까움을

확신시켰다고 해요~

[마적]의 초연은 성공적이었으나, 최후의 생명력을 불사른 [레퀴엠]을 미완인 채 놓아두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프리드리히 쿨라우인데요!

그는 독일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는데요~

1786년 9월 11일 독일의 하노버 부근

웰첸에서 군악대 연주자의 아들로 태어났답니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하단 이유로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잘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14세 때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음악활동도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나 체계적인 음악교육은 받지 못해서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오페라의 단원으로

참여하면서 당시의 명 연주자들의

오페라를 감상하러 다니면서 독일 음악계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요!

젊은 시절에는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시기라

1810년에 일어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징병을

피하기 위해 1806년 덴마크로 갔으며,

1811년 왕립극장에서 자작 피아노곡을 연주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813년 덴마크 시민권을 얻어 독일 음악을

덴마크에 알리는데에 노력하였고,

그 결과 바흐, 모차르트, 하이든, 슐츠, 글룩 등의

독일 출신의 저명한 음악가들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1817년 그는 2번째 오페라인 [마술피리]를

왕립극장에서 발표했는데요!

대본 제작에 참여한 올렌슐러 (Oellhenschler)와

옌스 바게젠 (Jens Baggesen) 두 사람은

당시 덴마크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였는데,

그만큼 두 작가를 지지하는 열성 팬들이

극장을 거의 차지하고 소란을 피우고,

당시 덴마크 국왕 프레데릭 5세가 금지했던

민주주의적 사상이 반영되었다는 지적이 나와서

상연은 실패로 끝났다고 해요😭

1830년 그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1831년 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인해 작곡 중이던

작품이 불에 타버려서 여러가지로 쇠약해진

쿨라우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1832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라크리모사 (Lacrimosa) 가사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Judicandus homo reus

Lacrimosa dies illa

Qua resurget ex favilla

Judicandus homo reus

Huic ergo parce Deus

Pie Jesu, Jesu Domine

Dona eis requiem

Dona eis requiem

Amen

이상 모차르트 레퀴엠 뜻과 라크리모사(Lacrimosa) 진혼곡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